명성산(鳴聲山) 산행

꽤 우울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자를 살피니 울 명(鳴)에 소리 성(聲)을 쓰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자운사로 올라가는 산길 초입에 서 있는 표지판에는 왕건에게 쫓기던 궁예가 이 산에서 죽었으며,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어서 울음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슬픈 사연이 있는 이름이긴 한데, 궁예라 하면 이 사람 얼굴이 먼저 떠오르니 ^^;


왕건의 건국사에서 미치광이 정도로만 취급되던 궁예의 죽음에 산도 따라 울었다니, 그리고 후세 사람들이 울음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억해 주었다면 그는 또 하나의 왜곡된 역사에 뭍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원래 솔로 세 명이서 기획한 산행이었다. 그러나 출발 당일 즈음에 우리의 화려한(?) 라이프에 반한 두명이 끼여서 다섯명이서 출발하게 되었다. 1박~2일!을 외치면서 -ㅅ-

명성산은 강원도 철원과 포천의 경계에 있으며 서울에서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구리로 가서 47번 국도를 따라 산정호수 방향으로 가면 도착한다. 회사를 마치고 바로 학교로 가서 애들이랑 합류하여, 두 시간이 걸려 산정호수에 도착했다. 아홉시가 넘는 시각에 도착하여 숙소 잡는 것을 조금 걱정했지만, 산정호수 부근에는 한화 콘도를 비롯하여 민박, 펜션 등등이 밀집해 있었다.  8만원에 괜찮아 보이는 펜션을 구하고 읍내에서 장을 봐서 바베큐 파티를 하면서 1박을 했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11시 정도에 산행을 출발했다. 세시간 정도 코스라는 찬희의 말에 소풍간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준비하여 출발했다.


그러나 자인사 뒷길로 올라가는 등산로 초입부터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전날 내린 비로 젖은 계곡 길을 따라가면서 시끄럽게 떠들던 우리는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장호는 세상 고민을 다 품은 표정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개시했다. 출발한 뒤, 한시간 정도 지나서야 다른 등산객 일행을 만났을 정도로 한적한 산길이었다.


두시간을 넘게 올라 삼각정에서 도착했고 명성산에서 유명한 억새밭을 볼 수 있었다. 초여름이라 막 자라기 시작한 억새 였지만, 산정상에서 보는 풀밭은 초원을 보는 듯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약수터에서 쉬면서 기운을 차린 우리는 능선을 따라서 삼각봉으로 향했다. 왼쪽으로는 깎아지는 절벽 바위산과 멀리 산정호수가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억새밭과 그 너머에 군사 훈련장으로 생각되는 길과 표식들이 보였다.



출발하여 다섯시간 정도 만에 목표로 했던 삼각봉에 도착했고 사진 한방 박고 야호 한번 외친 다음 서둘러 내려왔다. 오백 미터 정도 거리에 정상이 있었지만 지치고 배고팠던 우리는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거기다 곧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함도 있었고...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삼각봉에서 돌아오던 길에 보이는 신안계곡 쪽 등산로로 내려왔다. 이 길에서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가끔 새소리만 들으면서 걸었다. 


신안고개로 내려와서 처음으로 보이는 식당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고 식당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여 차를 얻어타고 자인사 입구에 세워둔 차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명성산은 억새밭으로 유명하다지만, 나에게는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의 풍경과 고요함 이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았다. 가을 억새밭은 언젠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by ridley | 2008/06/08 20:46 | 여행 떠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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